"필요없는 물건 좀 버립시다"
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언제 쓸지 몰라’주의자다. 어느날 작정을 했다. 필요없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기로.
때 지난 신문, 잡지, 서류부터 시작해 마구마구 분리수거 박스에 쓸어담았다. 그러다 발견한 연필깎이. 증기기관차 모양의 연필깎이. 가차없이 박스에 담았다. 이제 연필 깎을 일 없으니까. 구사일생이랄까. 이 친구 버려지기 전에 아빠에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이 친구의 역사. 20여년 전 아빠는 1년 간 일본에 파견을 가셨다. (그렇다, 난 외국인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이 연필깎이는 아빠가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오신 연필깎이였다.
- 홍성살이 1달. 집도 절도 없이 시작했다. 집을 구했고 살림을 채워나가고 있다. 간디 형아의 물레 라이프까진 못하겠지만 소박함을 지향하며 살고싶다. 하지만 새로 얻은 집은 냉장고, 세탁기가 있는 풀옵션방이 아닌 그저 텅빈 집. 채워야 할 게 무수했다. 한국 전쟁 직후 한국을 방문했던 외신기자들의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없었다.”
- 요즘 어딜가든 쓰레기장을 눈여겨 본다. 의자, 거울, 옷걸이...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혼 시절, 어려웠지만 살림 채워가는 재미가 있었지. 라고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을 이제 조금 이해하겠다.
- 자발적 살림. 자발적 노동.
집을 구하고 생활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주말 아침은 자연스럽게 살림의 시간이 되었다. 걸레질, 손빨래, 집수리.. 숨쉬고 살아있는 이상 살림은 끝이 없다. 그런데 만약 부모님 집에서 했더라면 입이 삐죽나왔을 일이다.
- 원룸을 구했더라면 어땠을까.
군인 시절 군숙소에서 살았다. 원룸이었다. 7년을 살았다.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잠을 자는 숙소였다. 시설에 대한 무책임, 무관심은 이 주변인 느낌으로부터 온게 아니었을까.
자본주의의 문제점 한가지는 돈이 되는 행위만을 일이라고 규정하는데 있다. 덕분에 우리 세대가 상상 할 수 있는 일의 폭은 줄어들었다. 우리가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진로의 선택 앞에서 자본주의는 이렇게 묻는다.
"그걸로 먹고 살수 있겠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 살아있기에 생기는 일 = 살림. 요즘 '일'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 기차 연필깎이는 다시 서재에.
무엇이든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존재를 갖는 게 아닐까. 1년만에 보는 아들. 그 공백의 미안함을 말하기 위해 샀던 연필깎이. 내겐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이 연필깎이는 아빠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유래없는 풍요와 소비의 시대. 그럼에도 여전한 곤궁함과 갈증. 그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다른 대상에게 마음을 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박용재 시인의 시를 덧붙인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삼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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